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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학부모회 활동의 근거가 되는 학부모조례가 제정되었다. 오래도록 학교 밖에서 학부모교육 및 활동을 지원해 온 필자로서 매우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각 교육청 별로 때론 교육부 차원에서 학부모교육과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사업이 부분적으로 이루어지긴 하였지만 조례로서 제도화되었다는 것은 학교운영위원회가 제도화된 것처럼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제도화가 된다는 것은 때론 본질은 사라지고 형식적인 활동에 그치기도 하는 등 새로운 문제들이 나타나기도 하므로 언제나 학부모들의 활동이 시작되던 처음의 마음을 알아보는 것이 본질을 지켜나가는 기초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민간차원에서 이러한 활동을 하나의 운동으로 전개해 온 지역사회교육운동의 활동을 잠깐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나라에서 학부모의 학교 참여가 이루어진 것은 지역사회학교활동이 소개된 1960년대 말부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한국전쟁이후 한국의 재건을 위한 유네스코 운크라 파한 사절단의 건의문에 지역사회학교 활동을 권장하는 내용이 나오고 이를 경기도교육청과 경상북도교육청에서 장학방침으로 채택하기도 했지만 본격적인 지역 사회학교활동을 1969년 한국지역사회교육협의회라는 민간단체가 지역사회학교운동을 시작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초창기 지역사회학교운동은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해서 학교와 지역사회가 손을 잡아야 한다는 새로운 교육철학으로 방과 후 운동장을 아이들에게 개방하는 일에서 시작하였다. 교실 하나를 학부모와 주민들을 위한 시설로 개방하고 배우고 싶은 사람과 가르쳐줄 수 있는 사람을 서로 연계해주는 학교 평생교육의 시발점이 되었다.
1970년대 80년대 학부모 임원들에게 지역사회학교의 이념을 교육하고 구체적 리더십훈련을 통하여 지역사회학교 운영방법을 알려줌으로써 다양하고 자발적인 학부모활동이 학교 안에 자리 잡게 되었다. 80년대 이후 서울중심의 이러한 활동이 전국으로 퍼져나가 전국 32개 도시에 이러한 학교를 지원하기 위한 지역사회교육협의회가 조직이 되어 전문적인 프로그램과 이를 지도할 강사자원 풀을 제공해주고 학교 간의 정보교류와 연합활동, 학부모리더십훈련 등을 통해 지역사회학교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전문적인 부모교육 프로그램과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이를 지도할 강사자원을 양성함으로써 전국의 학교에서 전문적인 부모교육과 예절 및 인성교육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자녀가 학교에 다니는 동안 학부모들은 지역사회학교 학부모회 활동을 통해 다양한 평생교육과 자원활동을 하였다. 학교예절명예교사, 학교도서관 사서도우미, 학교운영위원회 참여, 화단 가꾸기, 나눔장터 등의 다양한 활동은 학부모들의 사회적 참여와 전문적인 역량을 키우는 계기를 만들었고 자녀가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도 자원활동과 사회참여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었다. 한국지역사회 교육협의회에서는 이러한 학부모들을 부모교육전문가로 예절 및 인성교육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으로써 학교 밖에서 학교를 지원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또한 학교의 문제 지역사회의 문제는 새로운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어 학교안전문제, 세계시민교육, 금연교육, 진로교육과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학교교육을 지원하게 되었다.
이러한 지역사회학교활동은 결국 아이들의 교육을 효과적으로 이끌어 내기 위한 것으로 학교 교사들에게 새로운 지역사회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고 교사들만으로는 어려운 일들을 도와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학교개방에서 시작된 활동이 현재에 이르러서는 학교안전문제로 학부모와 주민의 학교출입이 제한되고, 사회적으로도 다양한 평생교육시설 및 기관들이 늘어감에 따라 학부모들의 활동은 현저히 줄어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제정된 학부모회 조례이기에 앞으로의 학부모 활동이 어떤 모습 전개될지, 학교와 협력할 지역사회교육전문기관의 역할은 무엇일지 생각해 본다.


나는 과학교육을 전공했지만 부끄러운 고백을 하고자 한다. 자연, 생물과 같은 과목을 배우면서 떡잎에 대하여 수없이 배웠지만 내가 실제로 떡잎을 본 것은 결혼을 하고 집에서 콩을 키우면서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중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생물을 배우면서도 '떡잎'은 교과서의 그림을 통해서만 보았기 때문에 그것이 어떤 현상인지 떡잎이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깊이 있는 이해가 없이 그저 지식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다가 실제로 콩이 싹을 키우고 자라면서 떡잎으로 변하는 그 과정을 발견하며 나는 그제야 떡잎이 콩이 변한 것이 라는 것을 감탄을 하며 알게 되었다. 정말 부끄럽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한 것이 어디 한둘이랴.
나는 도시에서 자랐기 때문에 농사라는 것을 해본 일도 배운 일도 없다. 물론 모든 사람이 농사를 지으면서 살수는 없지만 한 번도 흙을 고르고 씨앗을 심고 생명을 키우는 신비로운 경험을 해보지 않았다는 것은 참으로 내가 받은 교육이 문제가 있음을 느끼게 한다. 학교에서 배웠던 수많은 지식 가운데 지금 삶을 살아가면서 써먹는 것이 몇 가지나 되는지, 학교교육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 몇 사람이나 스스로 먹을 것을 지어먹고, 옷을 만들어 입고, 집을 지어 살 수 있는지, 학교교육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실제적인 것을 얼마나 가르쳐 주고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학교에서 이탈한 수많은 청소년들은 어찌 보면 그러한 학교교육의 과정과 삶을 연결시킬 수 없기에 흥미를 잃고 적응하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나 역시도 중고등학교 때 그런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이화여자대학교사범대학부속중학교 국어선생님으로 오래도록 일하셨던 조남숙 선생님의 80세 생신을 맞아 '편지'라는 책이 발간되었다. 학교를 떠나신 이후 20여년 지인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모은 책으로 그 속에는 수많은 제자와 자녀와 손자를 비롯하여, 존경하는 스승, 멀리 떨어진 친구들과 마음을 교류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주로 편지지에 손글씨로 씌어 진 편지들은 말린 꽃과 그림 등 원본 사진들이 함께 실려 감동을 주고 있다. 조남숙 선생님의 국어교육은 삶 속에서 무엇이 가치가 있는 것인지 무엇이 아름다운 것인지를 알게 해주신다. 아이들을 물가로 인도하지만 물을 마시는 것은 아이들 스스로가 할 수 있게 해주신 분이다. 선생님의 가치 중심의 교육 덕분에 수많은 문인들을 비롯한 훌륭한 제자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국어교과는 읽기 쓰기 맞춤법과 밑줄 긋고 분석하기의 기능적인 교육이 아니라 책 읽기와 시낭송 일기쓰기와 편지 주고받기와 같은 생활 속 실천으로 '삶'의 일부가 되어야 하며,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도록 돕는 것이어야 한다는 선생님의 생각과 실천이 이 책에는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진정한 교사는 아이들과 공명이 일어나야 하며, 교육은 지식전달을 넘어 마음에 울림을 만들어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는 사실을 온 삶으로 실천하신 분이기에 아직도 그 제자들은 학교를 떠나고도 멀리서 글로, 편지로 선생님을 찾는다.


교육은 삶과 유리된 것이 아니라 삶을 가르쳐야 한다. 특히 기초교육에서는 자연과 함께 교류하는 경험을 통해 그 위대한 우주의 경이로운 속삭임을 온 몸으로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 우리의 삶의 터전 속에서 실제로 어른들이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는 지를 보여주고, 그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학교 현실에서 교사 혼자 그런 모든 것을 할 수가 없다.
학부모들이 학교교육에 참여하기 시작한 이후 몇 십 년 만에 그것이 정식으로 조례화 되고 학교안의 공식기구가 되었다. 어떤 제도가 법으로 제정이 된다는 것은 법적인 보호를 받게 되고 어느 학교에서나 이러한 조직이 만들어져야 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것이 또 하나의 구속이 되어 짜여진 틀 속에서 자유로운 활동을 방해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언제나 제도화 될 때에는 그 의미와 본질이 훼손되지 않아야 한다.
학부모들이 학교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은 1969년 우리나라에 지역사회학교의 개념이 들어오면서부터이다. 미국에서 시작된 커뮤니티 스쿨 운동은 미국에서 경제공황으로 실업률이 높아지고 청소년 문제가 심각했던 시기였다. 그 가운데 프린트시는 미국전역을 통해 청소년 범죄율이 가장 높은 도시였고 이러한 청소년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당시 GM 자동차회사 부사장인 마트(C. S. Mott)씨는 청소년 회관을 지으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쿠크 학교의 체육교사인 맨리선생은 평소 우리의 재산인 학교를 오후 3시만 되면 걸어 잠그고 아이들을 골목으로 내보내는 모습을 보며 사람들에게 학교를 개방하자는 주장을 했지만, 자기 아이가 다니지도 않는 학교를 위해 3달러의 세금을 더 낸다는 것은 그 당시 주민들에게 그다지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마트씨와 맨리씨의 만남은 잠자고 있는 학교를 흔들어 깨우게 되었으며 청소년회관을 지을 계획을 가지고 있던 마트씨는 6,000달러를 프린트시 교육청에 기부하여 5개 학교를 지역사회학교로 개방하게 되었다.
청소년 문제 해결을 목표로 시작된 프린트시의 지역사회학교 운동은 다섯 학교에서 다음해에는 열다섯 학교로 늘어났다. 학교는 방과 후 주말, 방학에 관계없이 학교를 개방하여 어린이와 청소년문제해결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실시하였다. 10년 만에 또다시 청소년 범죄율 조사결과가 나왔는데 놀랍게도 범죄율은 1%도 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마트재단에서는 그 원인에 대하여 연구하게 되었고 결국 한 아이가 잘 자라기 위해서는 그 아이를 둘러싼 지역사회와 수많은 어른들 모두가 교육적으로 변화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에 공감하게 되었다.
처음에 청소년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움직이던 지역사회학교의 프로그램은 10년이 지난 다음 부모들을 위한 교육, 지역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교육을 함께 시작하게 되었다. 부모와 주민들이 학교에 와서 배우고 참여하자 아이들과의 교류가 시작되었다. 성인들의 교육과 참여가 병행되니 청소년 범죄율도 떨어지기 시작하더라는 것이 플린트 시의 경험이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영화가 우리나라에 1968년 한 국제회의에서 상영되었고 이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운동의 필요성을 논의하게 되다. 1969년 한국에서의 지역사회학교운동이 시작되었고 학교에서의 학부모와 주민들의 참여가 확대되기 시작하였다.
지역사회학교활동의 경험은 '지역사회교육'이라는 새로운 교육철학을 탄생시켰다.
지역사회교육은 학교가 중심이 되어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발전시켜가는 과정에 학부모와 주민을 참여하게 함으로써 주민의 성장과 자아실현은 물론 공동사회를 실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새로운 교육철학이다.
영국의 하트랜드에서 시작한 '작은 학교' 운동은 마을 전체와 교류하는 마을학교이다.
학교건물만이 학교가 아니라 마을 전체가 학교이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채소밭을 가꾸고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며 스스로 작업장을 짓기 위해 건축관계 공무원을 만난다. 공무원은 아이들의 작업장 설치에 대해 이것을 되고 저것은 이렇게 고치면 설계허가를 내주겠다며 도움을 주었다. 학교를 공동체의 중심에 두고 아이들과 어른들 사이에 친밀한 관계를 맺어 가는 것이다.


1970년대에서부터 1990년대까지 학교에서의 학부모의 자율적인 활동이 매우 활발하게 추진되었다. 학부모들은 이러한 지역사회교육의 철학과 운영방법을 배우고 학교별로 다양한 활동들을 추진하게 되었다.
학부모와 주민을 위한 취미 교양 프로그램을 비롯하여 학생들의 방과 후 교육과 방학 중 '매미학교', '흰눈학교', '숲속캠프 아버지와의 일일야영' 등은 지역사회학교 브랜드로 자리 잡았고, 학부모들의 힘으로 교육환경을 개선하고 학교환경을 개선하는 등 봉사활동이 활발히 전개됨으로서 학교 공동체를 만들어 가기 시작하였다. 학교라는 특성 때문에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자녀교육에 대한 요구가 커지기 시작하여 '부모교육'이라는 전문적인 프로그램들이 개발되어 운영되었고, 학부모들은 전문적인 교육과정을 거쳐 예절실과 도서실 상담실 등에서 명예교사로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학교를 도왔다.
초등학교에서 학부모 명예교사들에게 예절을 배우고 중학교로 진학한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 간에 비행을 저지르는 비율이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게 된 학부모 들이 찾아와 우리 학교도 이런 활동을 해보겠다며 참여하기 시작했다. 지방의 학교들은 지역사회와 더욱 깊은 교류를 할 수 있었다. 원주의 북원초등학교는 학교 안에 가장 좋은 약수가 나오자 이를 지역주민들에게 개방하여 받아가게 했고, 주민들은 스스로 약수터 관리위원회를 만들어 약수터에 지붕을 세우고 관리를 하게 되었다. 음성의 한 학교의 아버지들은 학교로 들어오는 진입로를 포장하고, 마을의 각종 직업을 가진 어른들과 학부모, 졸업생들은 일일 진로체험의 날을 운영하여 아이들로부터 직업에 대한 질문을 받고 체험을 지도해 주기도 하였다. 속리산의 수정초등학교는 생활로 바쁜 부모들을 위해 학교도서실에 온돌방을 설치하고 야간까지 돌보아 주는 교실이 생겨났다.
학교가 주민들을 위해 교육의 장소와 프로그램을 제공하니 주민들은 학교를 위해 화단도 가꾸어 주고 노인들은 아이들에게 채소밭을 가꾸는 법을 가르쳐 주기도 하면서 아이들과 마을 어른들 간에 만남이 이루어졌다.
학부모와 아이들 간의 만남, 교사와 학부모의 만남, 마을 주민과 아이들 간의 만남은 친분과 교류, 주민들에게 교육력을 갖게 한다. 초등학교에서 예절을 가르쳤던 한 학부모가 중학생이 되어서 담배를 피우는 아이를 만나게 되었는데 모르는 사람이면 무시하고 계속 담배를 피웠을 아이가 초등학교때 예절 선생님을 만나자 담배를 끄고 와서 인사를 하더란다.
현대사회와 같은 익명성의 사회에서는 아무리 어른이라 하더라도 자기와 관계가 없는 사람의 말은 영향력이 없다. 비행을 저지르는 청소년들이 모여 있어도 아무도 그들을 제지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학부모와 주민들이 배우기 위해 혹은 봉사하기 위해 학교를 드나들면서 아이들과 주민들은 서로 만나고 알게 되는 기회가 생기게 된다.
그러한 관계 속에서는 위험에서 아이들을 구할 수도 있으며,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야단도 칠 수 있는 교육력이 생기는 것이다.


아이들이 가장 친밀감을 느끼고 거주하는 가정 또한 학교이며, 아이들이 오고가는 지역사회는 직업교육의 장이다. 배움과 생활을 함께 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며 아이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를 배운다. 부모야말로 가장 먼저 만나는 교사로서 아이들의 삶에 70%의 영향을 미친다.
부모와 주민들이 깨어있지 않으면 학교에서 아무리 교사가 좋은 교육을 한다 해도 그 효과는 반감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어른들의 삶은 어떠한가? 학교를 졸업하고 결혼을 하고 직장을 다니고 봉급을 받으며 기계적인 삶을 산다. 삶의 문제들을 해결할 힘을 갖지 못한 채 우리는 미성숙한 어른이 되어버렸고 여전히 삶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으로 가득 찬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학교교육에서는 누구도 부모가 될 준비를 시켜주지 않았다. 누구도 '삶의 문제'를 대처할 수 있는 힘을 갖도록 가르쳐 주지 않았기에 어른들은 스스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깨어나지 못한 채 노년기를 맞는다. 우리는 한 번도 학교에서 '삶'이 무엇인지 부모가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생각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이제라도 학교는 학부모들에게 이런 것들을 생각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부모 스스로 자기 삶에 대해 깨어있고 부모로서 어떻게 살 것이며 어떻게 아이들을 키울 것인지 함께 고민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크리슈나무르티는 진정한 교육은 '삶의 문제'들에 올바로 대처할 수 있는 지성을 일깨우는 것이며, 지성은 어떤 틀이나 두려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하고 무엇이 진실인지 스스로 알아내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두려움은 자기존재의 인식이 바탕이 되어야 극복될 수 있다. 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얻거나 사실들을 끌어 모아 엮는 일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전체로 깨닫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을 누가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 삶의 위대한 가치들, 사람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하며, 서로 돕고 손을 잡을 때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 경쟁보다는 협력이 더 가치 있고, 서로 다른 생각들이 공존하는 화해와 용서의 문화를 만들어 내는 것, 더 많이 갖는 것보다 더 많이 봉사하고 공익을 위해 내어주려는 사랑의 문화, 이런 것들은 사실 말로써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래전 영국의 특파원으로 나가있던 동아일보의 남중구기자는 자기 아이를 영국의 학교에 보내면서 그곳의 학부모들의 활동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영국의 학교에서는 학기 초가 되면 학부모들에게 가정통신문을 보낸다. 학교에서 스쿨버스를 운전해 주실 분이 필요합니다. 아이들 체험학습을 인솔해 주실 분이 필요합니다. 아이들 생각에 페인트칠을 해야 하는데 도와주실 분이 필요합니다. 갖가지 자원봉사거리가 적힌 가정통신문을 보고 학부모들은 "저는 이것을 돕겠습니다. 이 시간이 좋습니다." 하면서 학교로 연락을 하고 시간을 맞추어 학교에 와서 자원봉사를 한다. 그러다가 학기말이 되면 '자원봉사 경매의 밤'을 열어 수많은 자원봉사거리를 경매에 붙인다. 예를 들면 '당신 집 아이를 일주일간 돌봐드리겠습니다.' '당신의 자동차를 한 달간 세차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그 일이 필요한 사람들은 경매에 가격을 올리고 결국 최종 낙찰이 되면 낙찰된 사람은 그 돈을 학교를 위한 모금함에 내고 자원봉사거리를 올린 사람은 그 사람 집에 가서 일주일간 그 집 아이를 돌보아 주는 자원봉사를 한다.
'그들은 왜 그렇게 모금을 하는 것일까? 그냥 학교에 기부금 얼마씩 내면되지' 그러나 아이들이 하는 모습을 보며 왜 영국 사람들이 그렇게 모금을 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곳의 아이들은 비영리단체를 돕기 위한 모금을 위하여 '하루 굶기-기아체험'을 하거나 '한 달간 책을 10권 읽겠습니다.' 하는 자기 실천계획을 걸고 스폰서를 찾는다. 그러면 어른들이 적은 돈을 그 아이에게 지원해 주기로 약속하고, 그 아이가 실제 그 행동을 완수하면 약속했던 돈을 지원해 준다. 초등학교 2학년인 딸도 하루를 굶고서 얼마간의 돈을 모았고 이를 맹인단체에 기부했다. 그랬더니 그 단체에서 편지가 왔는데 '아가씨가 보내주신 10파운드는 맹인들을 위한 점자책을 만드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우리는 아가씨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 편지를 본 아이의 표정은 아빠가 지금까지 보아온 얼굴 중 가장 행복한 얼굴이었다.
'그들은 아이들에게 돈을 어떻게 벌어서 어떻게 써야하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어른들의 삶을 보고 배운 아이들은 또다시 가치 있게 돈을 모아 가치있게 쓰는 법을 배우고 있었던 것이다.」

과연 교육이란 무엇인가? 더 많이 아는 것? 남들보다 잘해서 남을 이기는 것? '좋은 대학에 가는 것? 그리고 더 많은 봉급을 주는 안정된 직장을 얻는 것, 그 이상의 것은 없는 것일까? 우리 교육의 결과가 더 많이 이기적인 사람들을 만들어 내고 다른 사람들을 죽이면서 나만 살겠다고 하는 것이 정당화 된다면 교육은 더 이상 희망이 될 수 없다. 우리 어른들이 보여주는 삶의 방식이 이 정도라면 우리 아이들의 삶도 더 나아질 수 없다.
콩 한 쪽도 나누어 먹고, 이웃아이들을 함께 돌보아 주며, 이웃의 노인들을 함께 챙기던 동네 어른들의 모습이 살아날 때 우리 교육도 희망이 있는 것이다. 교육은 희망이어야 한다. 교육은 교사 한사람만의 몫이 아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어른들 모두의 몫이며, 부족하지만 함께 모이면 더 큰 지혜가 생기고 그 지혜를 공유하면서 아이들을 살리고 학교를 살리고 마을을 살려나가는 일이어야 한다.
학부모가 학교공동체의 일원으로 학교운영에 참여한다는 것은 선생님들과 대립하거나 세력화하기 위함이 아니다. 잡무에 시달리는 선생님들이 교수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아이들과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도우며, 학부모와 주민들의 전문성을 학교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연계함으로써 교육의 효과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또한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선생님과 학부모가 우리 아이들을 위해 서로 대화하고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누가 협력을 가르치고 헌신을 가르치고 봉사를 가르칠 것인가? 학교가 문을 열고 학부모와 지역사회와 손을 잡겠다고 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경쟁보다 협력이 더 나은 삶의 방식이며, 누군가를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아이들에게 세계의 모든 구성원들과 손잡고 다 같이 살아야 함을 온 삶으로 가르치는 것이다.
최고의 배움은 배운다는 의식이 없이 보고 배우는 것이다. 부디 학부모활동이 제도화 되는 이 시점에서 부모와 교사 모든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무엇을 보여주며 살 것인지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 글 : 김주선 / 한국지역사회교육연구원 상임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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