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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이 강물처럼 흐르는 학교 공동체를 위하여
토론이 있는 교직원회의 어떻게 시작할까
소통이 있는 교직원 문화
교복입은 시민을 꿈꾸며, 한마음 모은 새둥지
학부모와 함께하는 학교 교육 방향
법제화된 학부모회 기능과 역할의 발전 방안
학교와 지역사호 학부모의 아름다운 동행
학부모 활동의 실제



예전에 서울 - 도쿄 교사 교환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개인적으로 알게 된 일본인 선생님과 도쿄의 어느 노래방에 간 적이 있다. 노래방은 중앙에 넓은 홀이 있고 주변은 작은 방으로 칸막이가 된 구조였다. 홀에서는 함께 간 사람들이 음악에 맞추어 어울려 댄스를 추고 있었다. 도쿄는 거대한 메트로폴리탄의 중심으로,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시민들은 익명성 속에서 각자 자신의 삶을 살아갈 것으로 예상할 수 있지만 그 날 필자가 노래방에서 본 손님들은 서로 익숙하게 아는 사이인 것처럼 다정하게 서로 인사를 건넸다.
함께 간 선생님에 따르면 도쿄는 전체적으로는 익명 사회지만 마을 단위에서는 서로 알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또 한 가지, 영화 '쉘 위 댄스'가 상영된 이후 일본에는 댄스 바람이 세차게 불었는데 수준만 맞으면 도쿄 시장과 마을 쌀가게 주인이 함께 댄스를 추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의 말이 얼마나 정확한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필자에게는 약간의 충격이었다. 사회적 지위에 따른 불필요한 권위주의를 내려놓는 것이 소통의 출발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의 경우에도 구성원들이 불필요한 권위주의를 내려놓는 것은 소통 문화의 개선을 위해 필요한 조건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이 문제는 좀 복잡하다. 소통을 위해 권위주의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은 관리자만이 아니라 교사에게도 똑같이 요구된다. 서울의 초·중·등학교에 근무하는 대부분의 학교장들은 예전과 비교하면 권위적이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교장으로서의 의무는 많은데 교육활동과 관련하여 선생님들에게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교사들은 아직도 교장에게 가까이 다가가기가 어렵다고 한다. 교장으로서 무엇을 더 내려놓아야 학교의 소통 구조가 달라질 것인가?
교사들은, 학생들이 예전과 너무 많이 달라져서 가르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반면에 학생들은 아직도 선생님들이 자기네를 이해하지 않고 선생님의 뜻대로 학생들을 끌고 가려고 한다고 불평한다. 선생님으로서 무엇을 더 내려놓아야 학생과의 소통 구조가 달라질 것인가?
이렇게 보면 교장과 교사 간의 소통 문제와 교사와 학생 간의 소통 문제가 상당히 비슷한 구조임을 확인할 수 있다. 교장과 교사가 권위주의만이 아니라 권위까지 많이 내려 놨다고 하는데도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다고 하면 어디서 문제를 풀어가야 할 것인가? 학교 교육의 중심은 교사와 학생이기 때문에 교사의 자발적 헌신을 이끌어 내는데 도움이 된다면 학교장으로서 더 많은 권한을 위임하는 것도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배움에서 멀어져간 학생들로 하여금 다시 배움으로 돌아오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교사로서 추가적으로 포기할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보는 것도 필요하다. 배움의 중심은 교사가 아니라 학생이기 때문이다.


학교는 단순한 친목 조직이 아니라 명확한 목표를 가진 공적 기관이다. 따라서 교장과 교사가 소통을 위해서 권위주의를 내려놓아야 한다면 그것은 학교 조직을 구성원들이 생활하기에 마냥 편하고 즐겁게 만들기 위함이 아니라 교육의 본질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함이다.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학교에는 구성원이 지켜야 할 명확한 규칙이 있어야 한다. 아무런 규칙도 없이 구성원들이 편하고 즐거운 것만 추구하는 것을 허용한다면 학교는 교육이 불가능한 아노미 상태에 빠지고 만다. 시민사회는 구성원들이 자기운명을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집단인데 학교가 일종의 시민사회로서 기능하고 교직원과 학생이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누리려면 자기 행동에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 소통은 이를 가능케 하는 통로이다.
필자의 경험으로 볼 때 학교 구성원 간의 소통은, 학교 혁신을 위한 과제로서 민주적의사결정 구조의 확립, 학습 공동체 활성화, 학교 교육의 목표에 대한 구성원의 공유, 자치활동의 활성화, 토론과 질문이 있는 교실 그리고 학부모 학교 참여를 통해서 현실화 되며, 구성원이 합의한 규칙은 이러한 학교 혁신 노력이 옆길로 새지 않도록 막아주는 장치라고 생각한다.


가.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의 확립
서울의 초 · 중 ·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교장의 최대 어려움 중 하나는 교장의 방침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선생님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필자의 경험에서 보더라도 일상적인 수업 외에 학교행사나 체험학습, 혹은 행정업무 수행을 둘러싸고 교직원 상호간에 갈등이 종종 발생하며 이때 당사자들은 교장의 중재안을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끝까지 수용을 거부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교장의 방침이 당사자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결정된 것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럴 때 교장은 내려놓을 것 다 내려놨는데 무엇을 더 내려놓느냐고 할 수 있다. 반면에 교사들은, 아직도 교장이 일을 독단으로 처리하는 경향이 있다고 불평한다. 진실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이러한 문제에 접근함에 있어서 학교 운영의 '내용'과 '절차'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학교 운영과정에서 의사결정이 필요한 구체적인 사안(내용)은 구성원의 뜻을 존중하여 그때그때 결정하되, 의사 결정 원칙(절차)은 모든 구성원이 철저히 지키도록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의사결정 원칙도 구성원들이 합의하여 만들 필요가 있다. 스스로 정한 규칙은 모두가 철저히 준수해야만 원만한 소통이 이루어지고 갈등이 해소됨은 물론 소통의 과정에서 집단 지성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도 학교에 위임된 모든 문제에 대하여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논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스스로 만든 규칙에 따라 결정된 사항에 대해서 책임감을 갖고 실천해 나가는 것이 제도화되어 있는 학교들이 생겨나고 있다. 문제는, 이럴 경우 구성원들이 학교장의 권한을 침해하거나 교육활동 중에서 어려운 일은 하지 않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있지 않겠느냐 하는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민주적 학교운영에 대해 우려하는 것은 의사결정과 관련하여 한 가지 오해가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형식 논리상으로 보면 구성원들이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학교장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지만 실제 경험에 비추어 보면 '함께 행사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기에는 학교장과 구성원 간 상호 신뢰라는 변수가 있기는 하다. 필자가 부임하면서 '선생님들을 믿는다.'는 인사말을 한 바 있는데 다소간 시일이 지난 후 선생님 한 사람이 '교장 선생님은 말로는 믿는다 하면서 실제로는 우리를 못 믿는 것 같다.'고 항의를 했던 기억이 난다. '피그말리온 효과'를 언급할 필요도 없이 선생님들은 믿어주는 만큼 성장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믿음이 성장으로 이어지는 데는 어느 정도 기다림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민주적 학교 운영으로 인해 학교교육이 하향 평준화되지 않도록 하려면 구성원에 대한 지속적인 설득도 필요한데 이때에도 구성원 간에 축적된 믿음은 큰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경험적으로 보면 교직원들이 토론을 통하여 스스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과정 자체가 주인의식과 자발성 및 책임감 함양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따라서 학교 구성원과의 소통이 양적·질적으로 발전하게 되면 학교가 민주적으로 운영된다 해서 교육활동이 하향 평준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나. 학습 공동체의 활성화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더 나은 교육활동을 위해 연구하고 실천하는 모임으로 근래에 학습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학습공동체는 교사의 전문성 신장과 학생들의 학습증진을 위해 협력적으로 배우고 탐구하고 실천하는 교사 집단으로, 가치와 규범의 공유, 교사와 학생 모두의 배움, 구성원 간의 협력을 특징으로 한다. 중요한 것은 학습공동체가 교사들의 자발성에 의해 운영되는 구성원 간 '소통의 장'으로서, 학교 교육활동의 수준을 자율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교육 현실에서 교사들이 일상적인 수업과 행정업무 처리도 바쁜데 이런 활동을 자발적으로 한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임에 틀림없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학습공동체는 교사의 전문성을 향상하고 학생의 학습을 지원함에 있어서 기존의 전통적인 직무연수보다 효과가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인간에게는 성장하고자 하는 보편적인 욕구가 있는데 학습공동체는 교사들로 하여금 이러한 욕구의 충족을 가능하게 하는 모임이 되고 있는 것이다. 바쁜 가운데에서도 시간을 쪼개어 학습 공동체에 참여하면서 교육활동과 관련한 서로의 고민과 노하우를 함께 나누고 교실수업을 통하여 학생들에게서 새롭게 나타나는 반응을 체험하면서 교사들은 피곤함을 잊고 교사로서의 보람을 느낀다. 학습공동체 활동에 참여한 교사와 그렇지 않은 교사가 동일한 학생들을 어떻게 다르게 파악하는가에 관한 재미있는 조사결과가 있다.


이 조사 결과가 우리나라의 사례가 아니라고 무시할 일이 아니다. 학습공동체에 참여하는 활동은 교사와 교사는 물론 교사와 학생이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기회'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소통으로 인해 교사와 학생 모두 성장하는 체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학습공동체 실천 사례는 교사로서 진정한 보람과 기쁨을 얻는 길이 무엇인가 라는 중요한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다. 학교 교육의 목표에 대한 공유
학교는 공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기관이면서도 구성원 간의 관계가 공적으로만 맺어지지 않는 독특한 조직이다. 학교 조직의 이러한 성격은 구성원들이 사회적 관계를 맺고자 하는 인간으로서의 본질적 욕구 충족에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정서적 욕구 충족에 대한 과도한 기대로 구성원 간 갈등을 발생하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학교나 구성원 간 정서적 갈등으로 인하여 공적인 교육활동이 지장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와 관련하여 구성원들은 학교의 교육 목표와 기본 철학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목표에 대한 공유가 없거나 불분명하면 작은 정서적 갈등에 쉽게 함몰되어 조직이 혼란에 빠질 우려가 있다. 위에서 학습공동체는 가치와 규범을 공유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학교공동체 혹은 학습공동체와 무관하게 교육활동을 혼자 계획하고 실천하려는 교사일수록 구성원들과의 정서적 갈등에 힘들어 한다. 학교공동체 혹은 학습공동체에 참여하는 교사들은 구성원 간 소통에 지장을 주는 갈등이 발생했을 경우 그 책임을 분담하려는 여유가 있지만 그렇지 않은 교사는 자기 몫의 책임을 인정하기 어려워한다. 구성원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동체에의 적극적인 참여는 구성원 모두를 위한 것이다. 교사 한 사람의 불행은 학교 전체의 불행을 가져올 정도로 학교의 구성원들은 공동운명체로 묶여 있다.

라. 자치활동의 활성화
얼마 전에 전학을 온 학생에게, 우리학교에는 학생들이 지켜야 할 규칙이 있는데 규칙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물어 본 적이 있다. 규칙의 내용을 보여 주지도 않고 이런 질문을 던진 것은 규칙 자체에 대한 학생의 반응을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예상한 대로 싫어한다고 대답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런 질문에 비슷한 답을 할 것으로 생각한다.
규칙은 어른들이 학생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만든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규칙에 대한 이러한 부정적인 시각을 극복하지 않으면 학교의 질서 유지에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학교는 규칙을 강요함으로써 학생들로 하여금 아노미 상태를 암묵적으로 추구하도록 하고 있다. 그 규칙이 학생들에게 많은 이익이 되는 것이라 해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규칙이 학생들에게 외면 받는 것은 규칙의 '내용'이 잘못되어서라기보다는 규칙을 만드는 '과정'에 학생들이 소외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함정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규칙을 만드는 과정에 학생들을 참여시킬 필요가 있다. 갑론을박을 거쳐 만든 규칙에는 부분적으로나마 학생들의 의사가 반영되기 때문에 학생들은 이러한 자치활동 속에서 비로소 학교가 공동운명체임을 체험하게 된다. 이는 교직원들이 민주적 의사결정 체험을 통하여 민주시민으로서의 주인 의식과 자발성, 그리고 책임감을 함양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말하자면 학생들은 이러한 자치활동을 통해 서로 소통하면서 스스로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는 성숙한 모습으로 성장해 나간다. 자치활동은 '교복 입은 시민의 자질을 길러주는 교육의 장'인 것이다.

마. 토론과 질문이 있는 교실
영화 <사도>에서 영조는 나름대로 사도세자에게 훌륭한 군주가 되는 데 필요한 교육을 시키지만 자식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 일방적으로 자신의 뜻만을 강요하다가 결국 자식을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다. 의도가 아무리 좋아도 소통이 없으면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하는 것이 교육의 이치임을 보여주고 있다. '수업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란 질문은 일반적으로 제기되는 물음이 아니다. 수업은 당연히 학습자를 위한 것이라는 가정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러한 가정으로 인해 학습자가 배움에서 소외될 수도 있다.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잘 준비된 학습지도안을 가지고 재미있고 유익한 수업을 하려고 해도 교사가 일방적으로 학습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으로는 졸거나 학습에 참여하지 않는 학생들이 생겨나는 것을 방지하기 어렵다. 아무리 학습자의 지적 수준이 높다고 해도 토론과 질문이 없이 준비된 학습 내용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으로 수업을 이끌어간다면 긴장감은 떨어지고 수업은 매너리즘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때 학습자는 수업의 대상 혹은 객체가 되어 교사로부터 학생으로의 일방적 소통만 있을 뿐이다. 졸지 않는 학생은 인내심이 있는 많은 학생일 것이다. 학습자를 위해서 열심히 준비한 내용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때 교사는 자괴감을 느끼고 교사로서 자존감과 자기 효능감에 상처를 입는다.
동의학에서는 사람이 질병에 걸렸을 때 침을 놓아 치료를 하는 방법을 사용해 왔다.
침으로 해당 부위를 자극하여 경락의 기능을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토론과 질문이 있는 교실'은 학생에게 지적 자극을 줌으로써 잠자던 호기심을 활성화시킬 수 있다. 교사입장에서 볼 때 '토론과 질문이 있는 교실'에서는 학습자가 배움의 주체로서 배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예기치 않은 질문을 던질 수 있기 때문에 교사도 지적 자극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수업이 단순 노동에서 벗어나 긴장감 있는 예술 활동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저학년이라도 예기치 않은 질문에는 긴장하기 마련이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 교사는 공부를 하지 않을 도리가 없고 수업은 매너리즘에 빠질 여유가 없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한 수업 기술의 문제는 아니다. '토론과 질문이 있는 교실'의 성공 여부는 교사의 '수업 기법'이 아니라 학습자에 대한 교사의 '관심과 사랑'에 달려 있다.
가르침은 예술과 유사하게 몰입이 가능한 활동이다. 교육적 몰입이란 교사가 자신의 영혼을 교육활동에 바침으로써 성취감과 보람을 체험하는 절정 경험이다. 교사의 이런 체험은 학생들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열심히 공부하란 말이 없어도 교사가 배움과 가르침 속에서 성취감과 보람을 체험하는 모습을 보면서 학생들도 자연스럽게 배움에 몰입하게 된다. 결국 '토론과 질문이 있는 교실'은 학생만이 아니라 교사에게도 유익한 수업 방법인 셈이다.



바. 학부모 및 지역 사회와의 소통
학교는 지역사회와의 지속적인 교류와 소통을 통해서만 유지·발전될 수 있다. 그러나 아직은 학부모 및 지역사회와 학교의 소통 통로는 제한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학부모의 학교 참여는 학교와 교사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등 학교교육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와 있지만 현실적으로 교직원들은 학부모의 학교 참여를 간섭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많다.
학교운영위원회나 학부모회와 같이 제도화되어 있거나 일반화 되어 있는 기구가 있기는 하지만 대표로 선임된 학부모 외에 일반 학부모들의 참여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통계를 보면 학교 급이 올라갈수록 학부모의 학교 참여가 저조해지는 것으로 나와 있는데 이는 참여 의지가 낮아져서가 아니라 참여 기회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필요할 때만 참여해 주기를 바라는 경향이 많은 반면 학부모들은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필자의 과거 경험으로 보면, 학부모의 민원이 많았던 학교에서 학부모 연수를 활성화하는 등 학부모에게 학교 참여의 기회를 확대한 결과 민원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학교 참여에 대한 학부모의 소감을 들어 보면 처음에는 자기 자녀에게 뭔가 도움이 될까 해서 참여하기 시작했는데 점차 다른 학생들도 자기 자녀처럼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역 사회 또한 중요한 교육의 장으로서 학교와의 소통에 대한 필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교과서 공부가 교육의 전부라면 지역사회와 학교가 소통해야 할 필요성을 줄어든다. 그러나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도 있듯이 지역사회는 학생들에게 모태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지역사회는 학생들에게 일터 체험의 기회를 제공해 주는 등 삶과 분리된 교과서 위주의 교육에서 탈피할 수 있는 체험학습의 장이 될 수 있으며 지역사회 측면에서는 지역민들을 정신적으로 묶어 주는 문화센터로서의 기능을 할 수가 있다.


신진대사가 유기체의 건강 상태를 가늠하는 요소의 하나이듯이 소통은 조직의 건강성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조건이다. 학교는 교육을 중심으로 다양한 구성원들이 역할과 책임을 공유하거나 분담하고 있는 조직으로서, 원활하게 소통할 때 갈등을 쉽게 극복하고 행복한 공동체가 될 수 있다.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의 확립, 학습 공동체 활성화, 학교 교육의 목표에 대한 구성원의 공유, 자치활동의 활성화, 토론과 질문이 있는 교실 그리고 학부모 및 지역사회의 학교 참여 등은 학교 구성원 간 소통이 강물처럼 흐를 수 있게 하는 계기이자 조건들이다.

- 글 : 이민철 / 송정중학교 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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