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영 명예기자
지난해 10월 16일 치러진 서울특별시교육감 보궐선거를 통해 정근식 교육감이 당선되고, ‘미래를 여는 협력교육’이라는 서울교육방향이 제시되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의 전면 시행을 비롯하여 여러 변화를 마주할 2025년에 정근식 서울특별시교육감이 그리는 서울교육은 어떠한지, 서울특별시교육청을 방문하여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서울교육의 새로운 비전, 미래를 여는 협력교육
Q 교육감으로 취임하신 지 약 3개월 지난 지금,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2024년 10월 중순 취임한 후 바로 국정감사와 시의회 행정감사가 있었습니다. 다소 생소하고 힘든 과정이었지만 이를 통해 상대적으로 빨리 업무를 파악할 수 있었고, 학교 현장을 돌아다니며 실질적인 과제들을 알 수 있어서 서울교육을 이해하고 방향을 잡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되었습니다. 연말과 연시에는 약간 여유가 생겨서 2025년 새해 전체 교육 정책을 구상하고 가다듬을 수 있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우여곡절이 많은 상황이지만, 그래도 서울교육이 전반적으로는 큰 혼란에 빠지지 않고 잘 운영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Q 대전환 시대의 교육을 이끌어 갈 시대정신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도 하는데, 교육감님이 생각하시는 새로운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교육 철학은무엇인가요?
최근 서울재동초등학교 127회 졸업식에 참석하면서 우리나라 근대 교육의 역사에 대해 생각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 근대 교육이 구한말에 도입되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권위주의적 교육행정이 자리잡았고, 이후에는 산업화, 민주화 시기를 겪으며 모범이 되는 근대 교육을 따라잡기 위한 정책이 이루어졌습니다. 지난 교육이 전통적 공동체를 해체하고 개인 능력을 강조한 나머지 과열되고 배타적인 교육문화를 형성했다면, 이제는 보다 개방적인 태도를 바탕으로 한 협력교육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지구적인 맥락에서는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생태전환교육이 필요한 시기이며, 인공지능의 발달과 함께 새로운 미래역량을 육성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교육은 기존의 학력 중심 교육에서 미래 역량 중심의 교육으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지난 교육이 끝없이 공동체를 해체하고 개인 중심의 경쟁을 강조했다면,
이제는 보다 개방적인 창의와 공감의 협력교육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Q 학교 자치와 학교 자율성 실현 과정에서 단위학교의 협력은 어떤 모습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민주화 이후 우리나라는 아직 교육자치의 틀을 완전히 갖추지 않았습니다. 교육자치와 학교 자치를 위해서는 교육청-교육지원청-학교의 연결고리를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다 다양한 차원에서 협력이 가능한 교육 자치 체제를 만드는 것이 핵심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교육의 3주체라고 하는 교사, 학생, 학부모의 협력뿐만 아니라 학교와 학교 밖과의 협력도 필요합니다. 교육 공동체를 품는 시민 사회, 시민 사회를 품는 교육 공동체가 협력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 역시 교육주체의 한 축으로서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 다른 주체들을 인식하는 관계 중심의 자아가 형성되어야만 불안과 소외에서 벗어나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교육감님께서는 취임 일성으로 ‘차별과 격차를 해소해서, 모두에게 희망이 되는 교육을 만들겠다’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미래를 여는 협력교육’의 의미를 교육 격차 해소와 연관 지어 설명 부탁드립니다.
교육 격차에는 계층 격차, 지역 격차 등 여러 가지가 복합되어 있습니다. 서울교육을 중심 으로 생각한다면, 서울 내 지역 격차와 서울과 지방 간의 격차가 있습니다. 두 가지 모두 우리가 해결해야 합니다. 서울교육은 대한민국 교육을 이끌어가야 할 사명을 갖고 있습니다만, 너무 서울 중심주의로 가면 때때로 전국적인 관점에서 주변을 바라볼 수 없게 됩니다. 그런 맥락에서 농촌 유학, 다른 지역과의 교류 등이 확대되어 서울 학생들이 사회 전체적인 시야를 갖추면서 자라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그동안 언론 인터뷰에서 격차 해소와 관련하여 모든 학생들이 기초학력을 충분히 성취할 수 있도록 맞춤 교육을 실현하겠다는 말씀을 여러 차례 하셨습니다. ‘서울지역학습진단성장센터’ 설치도 이러한 맞춤 교육을 통한 기초학력 성취와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지역 학습진단성장센터’의 기능으로 어떤 것을 가장 기대하고 계신가요?
문해력, 수리력을 중심으로 학습 진단을 해보니 여전히 경제력이 영향을 크게 미침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학생 개개인의 장점은 살리고 약점은 보완해 줌으로써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학생들을 복돋아 주는 교육이 실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학생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해야 하고, 학습진단성장센터를 통해 약점을 보완하도록 하고자 합니다. 원래 ‘학습진단성장센터’의 명칭을 ‘학습진단치유센터’로 정하려고 했으나, ‘치유’라는 말은 무언가 결핍이 있다는 어감이 있어 고심을 하다가, ‘성장’이라는 말이 보다 긍정적인 메시지를 준다고 생각해 수정하였습니다. 우선 네 개 지역에서 이 센터를 운영하고 점차 확대할 것입니다.
‘학생의 꿈’, ‘교사의 긍지’, ‘부모의 신뢰’로 만들어 가는 서울교육
Q 교육지표로 제시하신 ‘학생의 꿈’과 관련하여, 교육감님의 학창 시절 꿈은 무엇이었는지, 어떻게 학자의 길을 걷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어릴 적에는 미래에 어떤 직업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지는 않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순간순간의 상황에 충실했고, 전반적으로 우여곡절을 심하게 겪지는 않았습니다. 연구자가 된 후부터는 공부와 취미가 별로 구분되지 않는 생활을 한 것 같습니다.
어떤 목표를 갖고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호기심’을 원천으로 무언가를 해왔습니다. 똑같은 것을 바라보더라도 호기심을 갖고 다르게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익숙한 것을 뒤집어 보기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어떤 사물이나 현상, 자기 자신까지도 다양한 맥락에 놓을 수 있어야 하며, 이는 역지사지(易地思之)와 연결됩니다. 다양한 맥락에서 자기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안정된 자아가 정립됩니다.
Q 최근 학업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 중 많은 학생들이 의대 진학을 희망하는 의대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고 학생들이 다양한 꿈을 꾸기 위해서는 학교 교육이 어떤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꿈을 상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첫 출발은 바로 3포 세대1의 출현 입니다. 예전에는 너무 꿈이 많거나 너무 허황된 꿈을 갖도록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사람들이 점점 꿈을 상실해 가면서 오히려 꿈을 다시 가져야 할 시기가 되었습니다. 이와 정반대에서 우수한 학생들이 도전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1990년대 말 IMF 사태가 빚어낸 풍경입니다. 세속적 욕망이 교육을 감싸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청소년들의 꿈이 한쪽으로 치우치면 사회는 큰 어려움에 직면합니다. 꿈은 사회 발전과 개인의 발전에 굉장히 중요한 자원이라는 생각이 ‘학생의 꿈’이라는 교육 지표에 녹아 있습니다. 학생 각자가 가진 적성과 진로 희망 등을 잘 가꾸어 나갈 수 있도록 교육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Q 새로운 미래를 살아가야 할 학생들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미래 역량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자신감이 중요합니다. 꿈은 어떻게 보면 자신감입니다. 나 스스로가 귀한 존재라는 인식,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꿈이 생깁니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무엇이든 쉽게 포기하게 되고, 꿈도 포기하게 됩니다. 요즘 강조하는 학생 스스로의 주도성 역시 자신감의 다른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학생들이 꿈을 가질 수 있도록 주도성과 자신감을 길러주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교사로서 ‘교사의 긍지’라는 지표가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최근 교권 추락 실태에 대한 우려와 비탄의 목소리가 많은데, 학교 현장의 교사들이 긍지를 갖고 학생들을 가르치도록 하기 위해 가장 우선시하고 계신 정책이나 제도는 무엇인가요?
교사의 긍지는 주관적으로는 제자들의 성장을 확인할 수 있을 때, 객관적으로는 사회로 부터 자신의 노력이나 수고를 인정받을 때 생겨납니다. 사회적 인정은 학부모 및 시민들로부터의 인정과 함께 선생님들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심리적 대책과 법률적 제도들이 뒷받침될 때 실질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최근 교권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여러 법률들이 실질적 효과가 적다는 의견들이 많은데, 이 또한 교사의 긍지를 높여주는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사의 긍지는 주관적으로는 제자들의 성장을 확인할 수 있을 때,
객관적으로는 사회로부터 자신의 노력이나 수고를 인정받을 때 생겨나는 것입니다.
Q ‘부모의 신뢰’를 얻는 것은 교육 공동체의 협력을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동시에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학교가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우리나라 교육은 학부모가 자녀를 학교에 맡긴 후 자녀들에게 어떤 변화가 있는가를 확인할 기회를 별로 주지 않습니다. 어떤 프로그램이 시작되기 전과 후에 학생들에게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보여줄 때, 부모는 교육 프로그램을 인정하고 이는 학교에 대한 신뢰로 이어집니다. 교사와 학부모들의 소통도 좀더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학부모와 지속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통로와 방법을 만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더 성장하는 서울교육을 위한 과제
Q 교육감님의 여러 인터뷰 내용을 통해 역사 교육에 대한 의지가 강하시다고 느꼈습니다. 역사 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교육감님의 견해가 궁금합니다.
역사 교육은 수많은 영역의 교육 중 일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모든 교육의 토대를 이루고 있는 민주시민교육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학생들이 머리로 지식을 학습하는 것이 아닌, 체험을 통해 올바른 역사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올바른 민주 시민 의식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토대로서 역사 교육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역사 교육은 매우 중요하지만, 지난 서울교육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그 중요성이 강조된 것에 비해 배정된 예산이 굉장히 적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역사교육을 위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부족합니다.
Q 생태전환교육과 관련해서 최근 기고하신 글2을 읽고,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생태전환은 다른 생명체의 아픔에 공감하는 데서 시작된다.”라고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생태전환교육에서도 ‘공감’이라는 가치를 강조하신 것으로 이해했는데, 이와 관련하여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생태전환교육의 방향성에 대해 하시고 싶은 말씀은 무엇인가요?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생태위기는 우리 일상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내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얼마 전에 교육청 직원들과 함께 “고래와 나”라는 영화를 보았고 이에 대한 감상을 한 언론에 기고했습니다. 핵심은 두가지라고 생각하는데, 첫 번째는 고래의 소리를 노래로 들을 수 있는 귀가 인간에게 있는가, 두 번째는 우리의 일상이 고래의 죽음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경각심 여부입니다. 죽어서 부안 해변에 떠오른 어린 고래의 뱃속에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커피 플라스틱 뚜껑이 나왔을 때,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올바른 생태전환교육은 다른 존재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 타인의 세계를 나의 세계로 열어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일상에 대한 성찰과 책임 의식에 생태전환교육의 핵심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2025년도 혁신교육의 힘은 협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지난 10년 간의 혁신교육이 이루어낸 성과는 무엇이고, 충분하지 않았던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 하시나요? 그리고 ‘협력교육’의 비전이 ‘혁신교육’과 어떻게 연결된다고 생각하시나요?
많은 사람들이 ‘혁신교육’이라는 이름 대신 ‘협력교육’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니 혁신교육을 부정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데, 혁신교육의 핵심에는 ‘경쟁교육을 넘어 협력교육으로 간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혁신교육은 학생을 줄세우는 교육이 아니라 모든 학생의 성장을 조력하고 협력적 학교 문화를 만들려는 노력이었습니다. 혁신교육의 핵심에 이미 협력교육에 대한 중요성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혁신학교는 학교의 수업을 바꾸고 교육의 관점을 새롭게 정립하는 등의 노력을 많이 했고, 혁신교육을 직접 경험한 학생, 교사, 학부모는 만족도가 높습니다. 그러나 혁신교육의 성과가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데 장애물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 장애물이 만약 대학 입시 제도에 있다면, 대학과 초·중등 교육 현장 양방향 모두에서 그 장애물에 대해 논의하고 이를 걷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계간 『서울교육』에 남기고 싶은 말씀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서울교육』에 사람들이 읽어보고 싶은 기사를 많이 실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독자들에게 피드백을 받고 이를 반영하는 노력을 계속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