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교육2025 봄호(258호)

[영어]
질문과 성찰을 통해 진정한
자신을 마주하는 탐구형 글쓰기 수업

김보석 (서울국제고등학교, 교사)

“No more run away, please.”

누구에게나 글쓰기는 두렵다. 그래서 도망치고 싶다. 빈 화면에 무언가를 써내야 한다는 생각은 글쓰기의 시작을 어렵게 만든다. 깜빡이는 커서와 함께 그동안의 내 생각도 깜빡깜빡, 점멸 등 신호처럼 희미하게 사라져 버리는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을 통해 소개하고자 하는 탐구형 에세이(Exploratory Essay)는 우리에게 한 번쯤 숨을 고르고 생각의 흐름을 정리할 시간을 준다. 완벽하게 짜인 논리로 유려한 글을 쓰지 않더라도, 글을 쓰는 중간에 방향을 잃더라도, 주제에 관한 생각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 변화하더라도 괜찮다. 아니, 어쩌면 이 에세이는 학생의 생각이 변화하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이런 생각의 변화와 심화의 과정에서 자신이 어떻게 길을 잃었는지, 어떻게 다시 답을 향해 나아갔는지 그 과정을 가만히 지켜보라고 권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서술해 보라고, 스스로 던진 질문에 관한 생각의 흐름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보라고 이야기한다.

따라서 탐구형 글쓰기 프로젝트의 기본 전제는 사람의 생각은 언제나 진화하며 내가 가진 질문에 한 가지로 아름답게 딱 떨어지는 정답이란 없다는 것, 그리고 무수한 정보와 직·간접적 경험, 성찰의 과정을 통해 우리의 생각은 깊어지고 폭넓게 확장될 수 있다는 것, 때로는 모순되어 보이는 다양한 진실이 존재하며 이를 열린 태도로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자세를 전제로 한다.

1. 프로젝트의 첫걸음

시작은 문학과 글쓰기를 결합하고자 하는 단순한 희망이었다. 2022년 가르쳤던 ‘Harrison Bergeron (Kurt Vonnegut Jr.)’의 강제화된 평등사회를 자신이 살고 있는 무한 경쟁 사회와 비교해 보고, 사회에순응 혹은 저항하는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내적 동기를 추론하며 이에 의미를 부여하는 학생들과의 토론이 너무나 흥미로워 이를 글로 남겨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적시에 마음이 잘 맞는 원어민 동료 교사를 만났다. 우리는 문학을 통해 학생들이 자신의 삶을 다시금 돌아보고, 자신에게 중요한 주제에 관해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는 글쓰기 수업을 디자인해 보자고 의기투합했다.

그리하여 2023년 2월, 가장 먼저 학생들이 공감할 수 있는 문학 작품을 선정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글에 몰입해야 무언가를 토론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길 것이고, 강렬한 감정과 동기를 느낄 때 글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글을 선정할 때엔 학생들의 수준 및 관심 영역 이외에 아래 제시된 요소를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였다.

이렇게 선정된 학기별 세 편의 텍스트의 제목과 주제는 다음과 같다.

2. 학생들은 어떻게 텍스트와 교감하였나

다음 작업은 학생들의 공감을 끌어내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작품에 접근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여러 차례 토론을 바탕으로 우리는 한 작품을 가르칠 때마다 사용할 수 있는 6차시 수업 모형을 아래 그림과 같이 만들었다. 1차시에는 작품을 읽기 전 주제에 관해 생각할 수 있는 자유 작문 과제를 주었고, 2차시에는 학생들이 직접 역할을 연기하며 작품을 읽고 가벼운 이해 확인 활동을 했다. 3-4차시에는 주요 장면과 주제에 대해 소그룹 및 학급 전체 토론 활동을 진행했다. 5차시에는 작품 집필 당시의 사회적 배경이나 작가의 생애, 혹은 작품과 연계해 읽어볼 수 있는 글, 영상 자료 등의 추가 소스를 제공해 작품을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마지막 6차시에는 이 모든 수업을 바탕으로 작품에 대한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창의형, 사회 연계형, 인물 분석형, 탐구형, 성찰형 저널 프롬프트를 부여하고 이 중 하나를 선택해 작성하게 했다.

토론 활동이 수업의 가장 열띠고 화려했던 꽃이라면 6차시 저널 쓰기는 한껏 깊어진 생각을 자신이 선택한 질문을 도구 삼아 정리한, 학생들의 개성을 담은 갖가지 색과 모양의 열매 같았다. 학생들은 올바른 문법과 정확한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부담을 잠시 내려놓고, 질문에 관한 자기 생각을 충실하게 표현하는 40분 글쓰기 활동에 몰입했다. 다소 울퉁불퉁 서툴더라도, 여전히 작품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토로하고 있더라도, 모든 저널 하나하나에는 학생들의 진솔하고 때로는 발칙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저널 쓰기 활동은 학생들에게는 제한된 시간 안에 생각을 담은 글을 써보는 기회가, 교사들에게는 학생들 개인의 마음과 현위치를 이해할 수 있는 창이 되었다.

윗글은 Tobias Wolff의 「Bullet in the Brain」을 배운 후 한 학생이 작성한 저널로, 주인공 Anders에 관한 것이다. 위의 표에서 설명했듯 이 이야기는 삶의 부정적인 경험으로 남은 것이라곤 냉소주의뿐인 비평가가 죽기 직전 자신에게 가장 강렬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는 장면을 묘사한, 다소 난해하고 어려운 글이다.

Anders에 대한 학생들의 첫 반응은 ‘충격과 공포의 대상’,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시니컬할 수 있지?’, ‘저런 주인공은 처음 봤어요. 절대 이해할 수 없어요.’ 등이었다. 하지만 위의 저널을 쓴 학생은 이와는 다른 접근법을 보인다. ‘과연 Anders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채, 그는 하루하루를 좀비처럼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어린 시절 작은 것들이 주는 행복을 잃은 우리의 마음속에도 Anders가 자라고 있을 수 있다고, 다시금 우리의 가슴을 두근두근 뛰게 하는 일을 찾자고 말이다. 그토록 미워하고 이해할 수 없다며 부들부들 떨던 Anders가 내 안에 자라고 있을 수 있다니, 친구의 글을 읽으며 학생들은 지금껏 사소한 것에 불평불만을 표현해 왔던 자신을 돌아본다. ‘아, 나도 크게 다르지 않은가? 나도 어린 시절의 순수함과 패기 있게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당시의 꿈을 잃어버렸나?’라고 질문하며 문득 자신을 둘러싼 그 모든 것들을 불쌍할만큼 삐딱하게 보는 Anders의 모습에 연민을 느낀다. 이 순간 학생들과 Anders의 심리적 거리는 크게 좁혀지며 학생들은 처음으로 그에게 ‘공감’한다.

이러한 형태의 글쓰기 수업은 글을 쓰는 그 과정 이전에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다양한 관점으로 확장하고 여러 갈래로 자극하는 데 큰 의미를 두고 있다. 다시 말하면 학생들을 이러한 어떤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시킬 것인지, 따라서 글을 통해 세상에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시킬 것인지를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자기 삶과 사회에 관련된 여러 작품을 읽고 토론하고 질문하고 글을 쓰면서, 학생들은 점차 자신과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혀갔다.

3. 탐구형 글쓰기 프로젝트를 시작하다

앞선 사이클을 두 번 더 반복한 후 5월 말, 학생들은 탐구형 에세이1 과제를 시작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탐구형 에세이(Exploratory Essay)란 텍스트에 관한 충분한 배움과 토론을 거친 후에도 여전히 자신에게 유의미하게 떠오르는 하나의 질문을 던진 후, 이에 관한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기록하는 글이다.

연구 보고서가 조사를 통해 알게 된 ‘결과’를 논리적이고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글이라면, 탐구형 에세이는 그러한 조사를 하는 동안 일어난 무수한 생각의 변화를 지켜보고 기록하며 자신의 깨달음이 깊어지는 ‘과정’을 기록하는 글이다. 특히 우리 수업에서는 ‘학생들은 문학 작품을 통해 자아와 사회를 탐구할 수 있는가?’를 중심축으로 삼고, 자신이 만든 질문을 중심으로 자아와 사회, 그리고 작품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고찰하며, 이 셋에 관한 이해도를 심화하고 발전시키기를 원했다.

아래의 그림은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단순하게 제작한 모형도로, 「Harrison Bergeron」을 토대로 ‘질투라는 감정은 인간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가?’라는 질문을 만들었다고 가정한 것이다. 먼저 학생들은 이 질문이 자신에게 중요한 이유를 설명할 것이고(예를 들어 나보다 우월한 형제 자매에게서 느끼는 질투심과 이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괴로운 마음), 작품에서 ‘질투’의 감정이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고 있는지를 분석할 것이다(예를 들어 우월한 사람들에게 부여하는 핸디캡 체제의 동기 등). 학생은 자료 탐색을 위해 친구들과 질투의 감정에 관해 이야기해 볼 수도 있고, 질투를 소재로 한 타 소설이나 영화에서 이 감정을 처리하는 여러 인물의 대응 방식을 비교하며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 또는 질투의 원인과 처리 방법을 사회문화적, 심리적으로 접근한 책이나 연구 결과를 통해 배움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자신에게 새롭게 떠오른 질문에 관해 고민해 보고, 여러 사례를 거울 삼아 자신이 유난히 질투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에 직면할 수도 있다. 이 밖에도 탐구 과정에서 자신과 너무나 닮아있는 인물을 발견할 수도, 이를 계기로 자기 모습을 객관화할 수도, 또 이 과정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혹은 한 단계 더 나아간 질문을 떠올릴 수도 있다. 그리고 주제에 관해 향상된 지식과 이해를 바탕으로 다시 작품으로 돌아가 무한 경쟁을 피하고자 핸디캡 제도를 만든 Handicapper General의 심리를 지금까지와는 다른 관점에서 이해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모든 생각의 변화 과정을 유기적으로 기록하며 이 질문을 탐색하는 과정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를 서술할 수 있을 것이다.

4. 탐구형 글쓰기를 통해 성장하다

프로젝트의 첫 단계이자 학생들 글의 기반이 되었던 ‘탐구형 질문’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충족해야 했다.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할 것, 자기 관심사 및 가치관을 반영할 것, 검색으로 쉽게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일 것. 자료의 허용 범위는 기존 학술적 에세이에서 권장하는 책과 논문, 기사를 벗어나 주변 인물들과의 대화, 강연, 미디어 컨텐츠 등 아이들이 사는 현실을 반영한 자료로 확대되었다. 형식은 자유. 단, 1) 질문에 대한 내적 성찰, 2) 외부 자료를 통한 생각의 변화 및 심화, 3) 새로이 배우거나 깨닫게 된 점과 추후 탐구 계획을 언급할 것.

질문을 만들어내는 것부터 생각의 깊이가 보이기시작했다. 확실히 학기 초에 비해 작품을 보는 시각이 날카로워졌다. “세 작품 속 인물들에게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감정의 결핍은 반드시 나쁜 것인가?”처럼 주제 하나로 여러 이야기를 엮어내기도 하고, “The Lizard Story에서 반인반수로의 신체적 결함이 열등감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였다면 왜 굳이 ‘도마뱀’이어야 했을까? 이는 문화, 역사, 상징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 등 수업에서 다루지 않았던 지점을 짚어내기도 했다.

총 10차시의 글쓰기 수업 중 탐구 계획 세우기, 개요 작성, 자료 탐색, 초안 피드백 등 많은 단계에서 학생들을 만났다. 초반 자료 검색을 통해 찾은 하나의 답이 타당하다는 논지로 글을 썼던 학생들에게는 새로운 관점에서는 그 답이 적용되지 않을 수 있음을 알려주며 열린 태도와 호기심을 전제로 다시 탐구 단계로 돌아갈 것을 제안했다. “불합리한 체제에 저항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무엇일까?”를 질문한 학생이 자신에게 이 질문이 중요한 이유를 정당화하기 어렵다고 하면, 자신이 과거에 불합리한 처우를 받을 때 어떻게 대응했는지의 경험을 떠올리게 했다. 자료들을 정리해 나열하는 정보전달식 글을 쓰는 학생들에게는 자신이 찾아낸 자료들의 상관관계 및 자료를 찾으며 생각이 어떻게 발전하거나 혹은 도전을 받고 한계에 부딪쳤는지 떠올리며 생각의 변화 지점을 글에 포함하게 하였다.

점차 학생들의 글은 여러 자료를 자신의 방식으로 재구조화하며 이들의 상관관계를 파악하는 능력을 보여주었고, 이후 자신이 내린 결론 혹은 깨달음을 다시 작품과 자기 사례에 적용함으로써 ‘나-작품-사회’를 연계해 사고하는 능력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윗글은 한 드라마를 통해 Harrison Bergeron의 클라이맥스인 ‘춤’의 의미를 재해석한 학생글의 일부로, 몸의 에너지가 고갈되어 죽음에 직면한 로봇들이 마지막까지 세상에 ‘닿기 위해(to reach)’ 춤을 추는 장면을 통해 Harrison에게 있어서도 춤은 타인과의 ‘연결’이자 ‘소통’의 도구였을지 모른다는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다. 또한 자신의 해석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작품에서 찾아 제시한다. 본인 역시 예술로서 자아를 표현하고 타인과 세상에게 닿고자 하는 공통된 욕망이 있음을 서술하며 주인공과 자신에 관한 더 깊이 있는 이해를 보여준다.

이렇듯 자신과 작품 및 새로운 자료를 서로 연결 지어 생각하는 능력 이외에도 학생들은 정보의 종합적 해석과 분석력, 주제에 대한 확장된 사고력, 향상된 인지‧정서적 능력과 공감 능력 및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학생들의 말을 빌리자면, 탐구형 글쓰기 프로젝트는 평상시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생각의 조각을 모으고 따라가야 해서 매우 도전적이었으나 또 그럴 수 있어서 유의미했고, 반드시 지켜야 하는 형식이 없다는 점에서 혼란스러웠으나 자신의 이야기를깊이 있게 고민하고 풀어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감사함을 느꼈다고 했다. 교사와 학생들이 느꼈던 탐구형 에세이의 장점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5. 글을 마치며

단 몇 초 만에 글을 완성해 낼 수 있는 AI에 글을 부탁하고 싶은 유혹이 너무 익숙한 시대에서 글쓰기를 가르친다는 것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지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아이들과 수업하며, 서로의 글을 나누어 읽으며 깨닫게 된 것이 있다. 읽고 싶은 글에는 글쓴이의 ‘자아’가 살아있다는 것.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AI가 대신해 줄 수 없는 가치, 가장 인간답고 가장 나다운, 자신만의 ‘생각’을 품고 있는 글이 가장 매력적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글쓴이가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며, 자신과 주변 세상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나온다는 것도.

학생들과 탐구형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강조했던것이 있다.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수업과 에세이를 통해 바쁜 공부와 과제 속에 잊고 있던 자신을 만나고, 가치관을 발견하고, 오래 갖고 있던 고민을 치유할 수 있었다. 학생들이 책에서, 세상에서, 친구들과 선생님과의 토론을 통해 얻은 자신의 답이 글로 남아 한참 후 그 시절 자기 생각을 돌아보고 이후 얼만큼 성장했는지를 돌아볼 수 있는 자료가 되길 희망한다. 글을 마치며, 탐구형 글쓰기 프로젝트를 통해 학생들과 이들을 지도했던 교사들 모두 한 걸음씩 성장하였음에 이런 귀한 시간을 훌륭한 학생들과 함께 나눌 수 있었음에 감사를 표한다.